나는 트림을 못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사실을 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초등학생 때부터는 알고 있었다. 내가 트림을 못한다는 것도 알았고,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못하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트림 교육도 받아봤다. “트림 어떻게 하는 거야?” 친구들의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다. “콜라 먹으면 나와.” 아니. 콜라를 먹어도 안 나오는 게 문제라고. 아무튼 그렇게 여러 번의 교육(?)에도 실패했고, 나는 그냥 트림을 못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이게 병이라는 생각까지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못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남들이 트림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도 싫어했다. 특히 대놓고 꺼억-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극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생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자의 질투였을지도 모르겠다.
25살, 지식인에 물어봤다
그러다 2014년, 스물다섯 살의 나는 네이버 지식인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지금 읽어보면 제법 구체적으로 증상을 써놨다. 맥주를 마시면 취하기도 전에 속이 먼저 안 좋아지고, 탄산음료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과식을 하면 목부터 배까지 가스가 꽉 차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방귀도 남들보다 많이 뀌는 것 같다고 썼다. 그리고 이 질문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무플이다. 답변 0.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던 증상에 R-CPD(Retrograde Cricopharyngeus Dysfunction)라는 이름이 붙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19년이었다. R-CPD는 흔히 ‘트림을 못하는 증후군’, 영어권에서는 ‘No-Burp Syndrome’이라고도 불린다. 트림을 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목이나 가슴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나고, 배에 가스가 차거나 통증이 생기고, 방귀가 많아지는 것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러니까 스물다섯 살의 내가 썼던 글은 거의 R-CPD 증상 체크리스트였던 셈이다. 그땐 이름을 몰랐을 뿐.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을 살았다. 그러다 2022년, 우연히 나와 똑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이 쓴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

너무 반가워서 댓글까지 남겼다. “저랑 같은 분을 이렇게 찾네요…ㅠㅠ” 내가 트림을 못한다는 사실을 안 건 아주 어릴 때였지만, 이게 나만의 이상한 몸 구조가 아니라 이름까지 있는 증상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2025년에는 R-CPD 네이버 카페에도 가입했다. 가입인사 제목은 이랬다. R-CPD계의 시조새입니다…😇 2014년에 쓴 지식인 글을 캡처해서 올리며,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무플이라고 자랑(?)했다. 그때 나는 제법 비장했다. “이젠 정말 치료도 쉽게(?)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병이 많이 알려진 것 같아 정말 병원에 가볼 때가 온 것 같아요..!” “용기내어 가보려고 합니다!!!” “치료 받게되면 후기 공유하겠습니다 🥹” …… 그리고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임신을 했다.
R-CPD 인간이 임신을 하면
두 번의 임신 모두 입덧은 있었다. 특히 둘째 때가 조금 더 심했던 것 같다. 초반에는 음식 자체가 잘 안 먹히는 흔히 말하는 입덧이었다면, 내게 더 힘들었던 건 배가 제법 나온 뒤였다. 배가 점점 커지면서 소화는 안 되고 속은 계속 더부룩했다. 물론 임신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 겪을 수 있는 증상이지만, 문제는 나는 트림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음식물을 밤톨만큼만 먹어도 속이 꽉 찼다. 소화는 안 되고, 배 안에서는 계속 공기가 생기고, 그 공기는 위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R-CPD 인간들이라면 익숙할 그 소리. 꼬르르르르르르르륵. 목에서는 계속 개구리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배 속에 사람이 하나 들어 있는데 공기까지 계속 쌓이는 느낌이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공기를 어떻게든 빼야겠다.
그리고 나는 ‘공기토’를 터득했다
R-CPD 카페를 보다 보면 시술을 받지 않고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트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고, 특정 자세를 취하면 트림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것저것 해봤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아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벌리면 공기가 나온다. 문제는 그 모습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트림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꺼억- 하고 시원하게 나오는 게 아니다. 거의 구역질을 하듯이, 우웩— 하면서 공기가 나온다. 눈물도 고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혼자 ‘공기토’라고 불렀다. 이게 정상적인 트림인지는 모르겠다. R-CPD의 치료법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남에게 따라 해보라고 권할 생각도 없다. 그냥 임신한 내가 너무 괴로워서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만의 비상구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살 것 같았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웩웩거려야 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훨훨훨씬 나았다. 나는 그렇게 공기토로 임신 후반기를 버텼다.
출산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리고 출산을 했다. 신기하게도 소화불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첫째를 낳았을 때도 그랬고, 둘째도 그랬다. 물론 출산하고 R-CPD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트림을 못한다. 다만 임신 중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소화불량이 사라지자, 트림을 어떻게든 해야만 살 것 같은 상황 자체가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공기토도 거의 할 일이 없어졌다. 거의..! 과식을 했거나, 맥주를 많이 마신 날을 제외하면. ㅋㅋ 출산 후에도 지금까지 세네 번 정도는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술 좋아하는 R-CPD 인간의 비애
사실 R-CPD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가혹한 병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술에 취해서 힘든 게 아니다. 취하기도 전에 속이 먼저 힘들어진다. 특히 맥주처럼 탄산까지 있는 술은 더하다. 배와 목에 공기가 가득 찬 느낌이 들면서 몸이 먼저 지쳐버린다. 술자리를 더 즐기고 싶은데 자꾸 눕고 싶어진다. 이럴 때 누우면 불편함이 바로 싹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 있을 때는 목으로 꾸르륵꾸르륵 올라오던 공기가 누우면 잠잠해진다. R-CPD 인간들이라면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생존법(?) 같은 거다.
한번은 베프들과 술을 마시다가 내가 힘들어하는 걸 친구들이 놀린 적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갑자기 울분이 터졌다. “나 이거 진짜 병이야. R-CPD라고 있어!” 그리고 분위기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날 같이 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 네이버 알고리즘에 갑자기 R-CPD가 떴다며 캡처를 보내왔다. “진짜 이런 게 있었네. 미안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데, 한편으로는 R-CPD라는 증상이 딱 그런 것 같다. 트림을 못한다. 말로만 들으면 별일 아닌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몸으로 하루를 살아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치료는?
R-CPD의 대표적인 치료법으로는 트림할 때 열려야 하는 근육에 보톡스를 주입하는 방법이 있다. 치료 후 트림을 할 수 있게 되고 관련 증상이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이 나와 있다. 나도 안다. 2025년의 나 역시 이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카페에 당당하게 선언했다. “용기내어 가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못 갔다. 시간적인 문제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무섭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게 참 묘하다. 속이 정말 안 좋은 날에는 이번엔 진짜 병원 간다. 싶다가도 며칠 괜찮아지면 또 잊는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 때 친구에게 트림하는 법을 배우던 아이에서, 스물다섯 살에 지식인에 질문을 올린 사람이 됐고, 서른두 살에는 인터넷에서 처음 같은 사람을 발견했고, 서른다섯 살에는 R-CPD 카페에서 시조새를 자처했다. 그리고 결국 치료 대신 임신을 한 번 더 하고, 그 와중에 공기토라는 이상한 기술 하나를 터득했다. 지금도 나는 트림을 못한다. 언젠가는 정말 병원에 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일단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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