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주사를 맞을지 말지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다. 예방접종도우미에서 내 기록을 찾아보니 나는 2018년, 2021년, 2023년, 2024년, 2025년에 독감주사를 맞았다. 딱히 건강에 부지런한 인간이었던 건 아니다. 회사에서 무료로 맞춰줬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회사로 독감 예방접종 안내가 왔고, 신청해서 맞으면 그만이었다. 공짜인데 안 맞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다. 회사에서 공짜로 맞던 주사를 내 돈 몇 만 원을 내고 맞으려니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독감주사, 올해도 맞아야 하나?
알고 보니 우리 셋 다 맞았었다
작년 겨울 일을 떠올리면서 처음에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임신 중이라 독감주사를 맞았고, 남편과 첫째는 안 맞았는데 둘이 나란히 A형 독감에 걸렸다고. 출산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남편과 첫째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나는 둘째를 혼자 낳으러 갔다. (대표사진 – 쓸쓸한 입원실) 그래서 은연중에 이런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독감주사를 맞아서 나만 안 걸렸나?’ 그런데 이번에 예방접종 기록을 뒤져보다가 반전이 있었다. 첫째도 전년도 10월 22일에 독감주사를 맞았다. 남편 기록까지 확인해보니 남편도 맞았다. 우리 셋 다 맞았던 것이다. 심지어 접종한 제품까지 같았다. 스카이셀플루프리필드시린지. 그런데 몇 달 뒤인 1월, 남편과 첫째는 A형 독감에 걸렸고 나는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당시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목이 칼칼하긴 했는데 괜찮게 넘어갔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백신을 맞았는데 둘은 독감에 걸리고 한 명은 목만 조금 칼칼하다 끝났다. 그러면 대체 독감주사는 뭘 하는 걸까.
맞아도 걸리는 독감주사
내가 독감주사를 조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독감백신은 ‘맞으면 독감에 걸리지 않는 주사’라기보다 독감에 걸릴 가능성과 심하게 앓을 가능성을 낮춰주는 백신에 가깝다. 실제로 백신 효과는 해마다 똑같지도 않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계속 변하고, 백신은 앞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를 예상해서 미리 만들어야 한다. 실제 유행 바이러스와 백신이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서도 효과가 달라진다. 2025–26절기 미국 CDC 중간 분석에서는 소아·청소년의 독감백신이 독감으로 인한 외래진료 위험을 약 38~41%, 입원 위험을 약 41%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에서도 외래진료와 입원 위험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100을 0으로 만드는 백신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
나 — 접종, 거의 증상 없음
남편 — 접종, A형 독감
첫째 — 접종, A형 독감
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남편과 첫째가 백신을 안 맞았다면 더 심하게 앓았을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내가 별다른 증상 없이 넘어간 것이 백신 덕분이었는지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만 임신 막달에 같은 집에서 두 명의 A형 독감 환자와 지냈는데 목이 조금 칼칼한 정도로 끝났다는 사실은, 올해 독감주사를 고민하는 나에게 꽤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A형 독감, B형 독감은 또 뭘까
처음엔 이것도 조금 헷갈렸다. A형 독감과 B형 독감이 있으니 각각 다른 백신이 있는 줄 알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감’이 바로 인플루엔자이고, 사람에게 계절성 유행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것이 A형과 B형이다. 둘 다 고열, 몸살, 기침 같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킨다. A형은 변이가 많고 큰 유행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B형은 주로 사람 사이에서 유행한다. 그렇다고 A형은 심하고 B형은 약하다고 단순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충분히 심하게 앓을 수 있다. 독감주사를 맞을 때 A형용, B형용을 따로 맞는 것이 아니라 한 시즌의 독감백신에 그해 유행이 예상되는 여러 인플루엔자 균주를 함께 넣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같은 백신을 맞았는데도 남편과 첫째가 A형 독감에 걸린 것은 ‘그 주사에 A형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독감백신을 맞아도 독감에는 걸릴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나는 우리 가족 셋을 가지고 꽤 거창하게 확인한 셈이다.
왜 매년 다시 맞아야 할까
또 하나 궁금했던 것. 독감주사는 왜 매년 맞아야 할까. MMR이나 수두처럼 몇 번 맞고 끝나는 예방접종과 달리 독감주사는 해마다 돌아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접종으로 생긴 면역 보호효과도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감백신 구성은 매년 검토되고 필요하면 그 시즌에 맞게 업데이트된다. 작년에 맞았다고 올해까지 그대로 보호되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내가 2018년부터 여러 번 독감주사를 맞았다는 이력도 재미는 있지만, 그렇다고 올해 주사를 대신해주는 적립식 면역 포인트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병원에서 맞든 같은 걸까
작년에 우리 셋이 맞은 백신 이름은 스카이셀플루프리필드시린지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혹시 남편과 첫째와 다른 백신을 맞아서 혼자 멀쩡했던 건가 싶었다. 확인해보니 같은 제품이었다. 그리고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것은, 독감백신은 병원마다 제조사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병원은 SK바이오사이언스 제품을 쓰고, 어떤 병원은 녹십자, 보령 등 다른 제조사의 백신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각 병원이 전혀 다른 독감을 예방하는 주사를 놓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절기의 독감백신이라면 그해 권장되는 인플루엔자 균주를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제품마다 제조 방식 등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느 병원에서 어느 회사 제품을 맞을지를 지나치게 고민하기보다는 그 시즌 백신을 제때 접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나도 올해 맞게 된다면 굳이 작년에 맞은 스카이셀플루를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
아이는 왜 첫해에 두 번 맞을까
예방접종 기록을 보다 또 하나 발견했다. 첫째가 처음 독감주사를 맞았던 해에는 약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을 맞았다. 올해 처음 독감접종을 시작하는 둘째도 두 번을 맞게 될 것 같다. 어린아이의 경우 이전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한 시즌에 최소 4주 간격으로 2회 접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첫 시즌에 필요한 접종을 마치고 나면 이후에는 보통 매년 한 번씩 접종한다. 그래서 올해 우리 집 독감주사 계획을 놓고 보면 첫째는 한 번, 둘째는 두 번이다. 아이들은 국가예방접종 대상이라 무료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그래서 올해도 맞을 것인가
회사에서 무료로 맞춰줄 때는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다. 그냥 맞았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나니 갑자기 한 번에 몇 만 원짜리 주사가 됐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독감주사를 맞고도 독감에 걸리는 경험까지 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안 맞아도 되는 걸까. 여기까지 찾아보고 내린 결론은 조금 애매하다. 독감백신은 나를 독감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켜주는 주사는 아니다. 실제로 작년에 같은 백신을 맞은 우리 가족 세 명의 결과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걸릴 가능성을 낮추고, 걸리더라도 심하게 앓거나 병원 신세를 질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맞는 주사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집에는 어린아이 둘이 있다. 아이들 둘 중 하나가 아픈 것도 힘들지만 부모 중 하나가 독감으로 뻗는 순간 육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작년에는 출산 직전에 남편과 첫째가 동시에 독감에 걸렸고, 나는 혼자 아이를 낳으러 갔다. 독감주사를 맞아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기억 때문에 올해도 독감주사가 신경 쓰인다. 맞았는데도 걸렸으니 안 맞을까. 그래도 나는 괜찮게 지나갔으니 또 맞을까. 아마 몇 년 뒤에도 나는 가을이 되면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그때의 내가 다시 이 글을 읽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독감주사는 맞는다고 절대 안 걸리는 주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주사도 아니었다. 일단 올해 아이들은 맞힌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조금만 더 고민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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